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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8일
이러한 그의 핵심적인 사유를 놓고 보면 우리는 탈레스를 물질주의자라고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질인 물이 모든 것의 기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철학자는 모든 것을 물질에서 이끌어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철학사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물론 탈레스가 상당히 초보적인 물질주의자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세계의 근원적인 본질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근원적인 구성 성분에 대한 물음은, "물이 근본원칙"이라는 단순한 가설로 답변할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물음이다. 그러니까 탈레스는 물질주의자이지만 이미 시효가 없어진 그의 가설을 놓고 보면 이제 그를 진지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 속에 들어 있는 철학의 시작 부분에 대한 경멸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물에서 생겨났다는 이 명제를 단순히 철학적 물질주의의 표현이라고 해석한다면 올바르게 이해한 것인가? 이에 덧붙여서 탈레스가 물질주의적 해석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번째 명제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런 의혹은 더욱 강해진다. 그의 두 번째 명제는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 (29페이지) 2004년 11월 28일
탈레스는 "이 모든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나아가 "그 모든 것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무엇이 이 모든 것의 기원인가? 이 모든 것을 각기 그것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그 하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것, 그 원칙은 대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가 스스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물음들이 탈레스의 핵심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철학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본질과 바탕에 대해 묻는 것이 오늘날까지 철학의 핵심적인 관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탈레스가 이 질문에 대해 내놓은 답변은 아주 이상하다. 그는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물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뭐라고? 우리 눈앞에 온갖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 이 모든 것들, 산과 별과 짐승과 우리 자신과 우리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 등 이 모든 것이 물에서 나왔다고? 가장 깊은 본질은 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작의 순간에 보이는 철학이란 정말로 이상하기 짝이 없구나. (29 페이지) # by 필프레소 | 2004/11/28 01:56 | 트랙백
2004년 11월 28일
결혼과 아버지가 되는 일에서 보인 이런 신중한 태도를 찬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이 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정말로 철학적이다. "탈레스가 별을 관찰하느라 위를 쳐다보다 우물에 빠지자 재치 있고 영리한 트라키아 출신 하녀가 탈레스는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고 하면서 자기 발치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비웃었다고 한다." 우물 속의 철학자가 상당히 진귀한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플라톤은 이 이야기에 진지한 설명을 덧붙인다. "동일한 비웃음이 철학에 빠져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다. 이런 사람에게는 가장 가까운 이웃 사람이 정말로 알 수가 없는 존재인데, 그 이웃 사람이 무엇을 하는가를 모를 뿐만 아니라 그가 인간인지 아니면 다른 생명체인지도 확실하게 모르는 것이다. ...... 철학자가 법정이나 다른 곳에서 자신의 발치나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말해야 할 경우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얻는다. 트라키아 여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웃게 만든다. 경험이 없기에 그는 우물에 빠지고 온갖 당혹스런 상황에 빠진다. 그의 미숙함은 두려울 정도이고, 단순하다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그 다음에 결정적인 말이 나타난다. "그러나 철학자는 인간이란 무엇이냐, 다른 존재와 달리 인간은 무엇을 행하고 겪는 것이 합당하냐 하는 점을 탐색하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제 사태가 뒤집힌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올바름의 본질이 중요한 문제가 되거나 다른 본질적인 의문들이 문제가 될 경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철학자들의 시간이다. (27 페이지) 2004년 11월 28일
여러 가지로 추측해보면 탈레스는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깊이 사색을 했을 뿐만 아니라 삶, 그리고 삶의 괴상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고대의 증인들은 이 사실을 멋진 일화로 들려준다. 어머니가 결혼하라고 독촉하자 그는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자 어머니는 더욱더 결혼을 재촉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젠 결혼할 때가 지났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보다 더 심오하다. 어째서 자식을 두려고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26페이지) 2004년 11월 28일
나이가 들어 삶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기 삶의 시작부분을 돌아보는 고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철학에도 그런 일이 생긴다. 철학은 2,500살이나 되었으니까.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철학은 곧 죽어버릴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다루는 학문이 지치고 낡아서 약간 덜그럭거린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 철학이 아직 신선하고 젊은 힘으로 존재하던 그 시작의 시간을 알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난다. (23 페이지) 2004년 11월 28일
제 친구가 '철학의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독일의 빌헬름 바이셰델이라는 철학교수가 썼던 책을 안인희 선생님이 옮기셨지요. 저는 책을 출판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 여러 가지 의논도 같이 하고 출간되기 전의 원고도 반복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도 좋아지고 철학에 대한 관심도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이를 먹어온 덕분인지는 몰라도, 예전에 철학에 대해 공부해보려 하다 보면 느껴지던 당혹감은 줄어든 것 같습니다. 대신, 철학자들의 특이한 삶들을 배경으로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보고 저 나름대로의 생각을 펼치는 일이 독특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 블로그는 친구가 출간하고 제가 도운 이 책이 좀더 알려지게 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지만, 제가 더 공부하면서 다른 분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우선은 책 본문 중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블로그를 채워가려고 합니다. 저의 블로그에서 의미있는 콘텐츠들을 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